조우현 기자 =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내달 4일 반(反)보조금 차원에서 중국산 전기자동차에 대해 고율의 관세 부과를 예고한 가운데 중국이 유럽의 에어버스 여객기 구매를 적극적으로 타진하고 나서 주목된다.
이를 두고 EU가 전기차 이외에 태양광 패널·풍력터빈·전동차·의료기기·주석도금 강판 등 중국산 반덤핑 조사 착수로 '관세 전쟁'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중국이 에어버스 여객기 100대 구매라는 당근책을 꺼내 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5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대만 중국시보,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EU 집행위 관계자가 중국 자동차 관련 단체에 내달 4일부터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잠정 상계관세가 부과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상계관세율에 대해선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달 14일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중국산 전기차에 대해 연내 100%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한 점에 비춰볼 때 EU 집행위가 그동안 매겨온 평균 상계관세율 19% 수준 이상을 책정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대해 미국 민간연구소 로듐그룹은 EU 집행위의 상계관세율이 50% 미만일 경우 EU가 중국산 수입을 억제하면서 EU 역내 전기차 산업을 보호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독일의 키엘세계경제연구소는 20% 상계관세 부과 땐 현재 EU 전기차 수입액의 25% 수준인 38억달러어치의 중국산 전기차 유입을 차단하는 데 그칠 것으로 봤다. EU 집행위는 이달 6∼9일 EU 27개 회원국에서 진행되는 EU 의원 선거에서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반(反)보조금 조사와 그에 따른 상계 관세 부과가 선거의 핫이슈로 부각하는 걸 막기 위해 애초 이날 발표 예정이던 관련 결정을 내달 5일로 한 달 늦췄다.
EU 집행위는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잠정 상계관세 부과 여부를 결정하고 나서 4개월 동안 논의를 거쳐 해당 품목에 대해 영구관세를 부과할지 정한다.
문제는 앞으로 EU 집행위가 반덤핑 조사를 벌여온 중국산 여러 제품에 추가적인 징벌적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크고, 그에 중국이 맞대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번 EU 의회 선거 결과, 현재 EU 집행위원장이자 대중국 강경정책을 주도해온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65)이 연임하게 되면 EU와 중국 간 관세 전쟁의 파고가 더 높아질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은 올해 초 프랑스산 코냑을 포함한 수입 브랜디 반덤핑 조사도 개시한 데 이어 지난달 19일 대만·미국·일본 이외에 EU산 폴리포름알데히드 혼성중합체(POM)에 대한 반덤핑 조사에 들어갔다.
폴리포름알데히드 혼성중합체는 자동차 부품이나 전자·전기제품, 공업 기계, 일상용품, 운동기구, 의료기구, 배관 부속품, 건축자재 등에 직접 쓰이거나 변성 후 사용될 수 있다.
중국은 여기에 EU산 돼지고기와 EU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 인상도 고려 중이다.
하지만 중국이 각종 경제·안보 이슈로 미국과의 갈등과 대립이 고조되는 가운데 우회로 격인 EU에 대해선 '강온양면책'을 쓰고 있어 눈길을 끈다.
특히 중국은 자국과 교역량이 많은 독일이 EU 집행위의 중국산 전기차 고율 관세에 반대하고 EU의 27개 회원국 중 중국 친화적이라는 점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지난달 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5년 만의 유럽 방문길에서 프랑스·세르비아·헝가리를 찾은 것도 전기차 등 중국산 제품을 겨냥한 EU의 반보조금 공세를 완화하려는 시도였다는 분석도 있다.
외교가에선 이 시점에서 중국의 국영 에어차이나(중국국제항공)·남방항공·동방항공 등이 유럽의 다국적 항공기업 에어버스로부터 업그레이드된 여객기 A330 모델 100대를 구매하려고 나선 배경에 중국 당국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고 있다고 본다.
중국이 미국 보잉사와 함께 세계 항공기 시장을 석권하는 에어버스 여객기를 구매함으로써 EU 친화적 온건책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 국영항공사들과 에어버스 간에 "판매 조건에 대해 여전히 논의가 이뤄지고 있으며 구체적인 계약 체결 시기가 불확실한 상태"여서 계약이 성사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블룸버그는 전망했다.
이 통신은 그러면서 에어버스 여객기의 대(對)중국 판매 건은 "중국과 EU 간에 경제적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EU 집행위의 반보조금 조사와 상계관세 부과를 둘러싸고 이상기류에 휘말릴 수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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